
지리산 서쪽, 해발 1,507m의 높이로 솟아있는
노고단은
이 산의 수많은 봉우리들 중에서도 영봉(靈峰)
으로 손꼽
히는 곳이다. 화엄사 계곡을 따라 오르는 10㎞의 노고단
산행 코스는 중간부터 가파른 길이 이어져 숨이 턱턱
막히기도 하지만, 정상에 올라 바라보는 경관은 4시간 남짓의 힘든 산행을 한층
뿌듯하게 해줄만큼 장엄하다. 특히, 노고단 아래 펼쳐지는 '구름 바다'의 절경(絶景)은 가히 지리산을 지리산답게
만드는 제1경(景)이라 불러도 손색없다.
화엄사 계곡의 끝머리 바위턱에 앉아 파도처럼 밀려갔다 밀려오며 계곡을 덮고
능선을 휘감아 돌다 저 들녘까지 이르러 온통 하얀 솜이불을 깔아놓은 듯 펼쳐지는
운무(雲霧)를 바라보고 있느라면 잠시 인간 세계를 벗어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만큼 신비롭기 그지없다. 노고단은 지리산 종주 코스의 출발점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에서 임걸령-반야봉-
토끼봉-벽소령-세석평전을 거쳐 천왕봉에 이르는 장장25.5㎞의 지리산 능선길은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밟아보고 싶어하는, 영원한 동경(憧憬)의 코스다.
봄에서 초여름까지 노고단의 비경(秘境)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원추리꽃이다.
운해와 샛노란 꽃망울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경치는 가히 제1경이라 할만하다.
이곳이 얼마만큼 멋드러진 산중(山中)인지를 웅변해주는 상징물로 이국(異國)
선교사
들의 별장터가 있다. 1930년경에는 50여채나 들어섰다는 서양 선교사들의 별장은
여순
(麗順) 사건의 와중에서 대부분 불타버리고 지금은 서너군데 돌담터만 옛 추억을
간직한
채 고즈넉하게 서 있다. 이제는 성삼재까지 포장도로가 뚫려 아이들도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오를 수 있는 코스가 개발돼 한층 가까워진 봉우리, 노고단, 그 정상을 향해 터벅
터벅 산길을 오르다보면 곳곳에서 다람쥐들이 뛰쳐나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재빨리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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