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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산악인, 악마의 성벽에 오르다(16)

cj8848 2009. 1. 26. 00:06

 




[OSEN=탈레이사가르(인도), 박승현 기자] 4일 새벽 3시. 해발 5600m 캠프2에 놓인 무전기에 목소리가 흘렀다. “날씨가 매우 좋다. 운행개시하라”.

베이스캠프에서 새벽 2시부터 일어나 탈레이사가르 북벽의 상황을 지켜보던 박희영 원정대장이 캠프2에 있는 구은수 부대장을 호출했다. 이날의 임무는 8월 27일 구은수 부대장이 올랐던 최종지점(6300m)까지 다시 올라가면서 루트를 완벽한 상태로 복구시키고 앞으로 등반에 필요한 장비를 올려 놓는 것이었다.

구은수 부대장, 김형수, 윤여춘 대원 등 3명은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친 후 장비를 챙겨 오전 5시 운행을 시작했다. 이날은 베이스캠프 온도가 영하 2도, ABC 영하 7도까지 떨어졌다. 캠프2의 온도는 더욱 차가웠지만 구은수 부대장팀은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날씨가 추워졌기 때문에 미리 설치해 두었던 픽스로프도 사용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거기다 자일 459m와 아이스스크루 등 암빙벽 장비를 함께 수송해야 하는 일은 그야말로 고행의 연속이었다.

대원들의 운행 시작과 함께 ABC에 있던 서우석 기술위원도 같이 바빠졌다. 서우석 기술위원은 망원경을 통해 대원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대원들이 올바른 루트를 잡을 수 있도록 무선 교신을 통해 지시를 내렸다. 만약 등반 중에 조금이라도 이상한 상황이 발생하면 지체없이 상황을 점검하는 것도 서 기술위원의 몫.

이날도 구은수 부대장팀이 움직인 지 얼마되지 않아 무전기에 “빨간색 자일이 우측으로 처진 것이 좀 이상하다. 어떻게 된 것인가”라는 음성이 들렸다. 구은수 부대장이 “앞서 루트를 개척한 팀에서 지형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처지도록 한 것이고 이에 대해 조치를 취했다”고 답변함으로써 상황이 정리되었다.

사실 탈레이사가르 북벽과 같은 거대한 벽에 사람이 붙으면 바른 루트를 찾아 올라가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다. 물론 사전에 지도, 사진, 앞서 등반한 팀의 등반기록 등을 통해 탈레이사가르 북벽 전체의 모습을 머릿속에 입력시켜 놓았다 하더라도 막상 등반이 시작되면 길을 잘못 들거나 어느 길로 가야할지 막막하게 느끼게 마련이다. 특히 탈레이사가르 북벽 처럼 기후에 따라 모습이 바뀔 정도로 변화가 무쌍한 산에서는 직접 등반에 나서는 대원 못지 않게 이들의 눈이 되어줄 사람의 책임이 클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서우석 기술위원은 등반이 시작되고부터 거의 대부분 시간을 ABC에서 보내고 있다. 삼각대 위에 설치 된 망원경이 그의 유일한 벗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여 날씨라도 나빠져 등반하는 대원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까 노심초사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전날 전대원이 나서서 캠프1, 캠프2 복구 작업에 구슬땀을 흘린 정성에 감복해서일까. 4일은 등반 시작 후 처음으로 하루 종일 날씨가 좋았다. 걸핏하면 구름속에 제 모습을 감췄던 탈레이사가르 북벽도 이날은 새벽부터 해가질 때까지 위용을 뽐내며 마치 한국 산악인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덕분에 구은수 부대장 팀은 쉬지 않고 등반을 계속, 마침내 오후 3시께 지난 8월 27일 구은수 부대장 자신이 도달했던 6300m지점에 도달했다. 그 사이 눈과 얼음에 묻혔던 자일을 파내고 다음 팀의 등반이 용이하도록 자일의 상태를 정돈했다.

구은수 부대장은 이미 10시간 정도 힘든 등반을 계속했으면서도 고도를 높혔다. 100m정도 더 올라가 고정로프를 설치한 다음 하강길에 나섰다. 원정대로선 실로 일주일 여만에 등반 고도를 높인 셈이다. 그 동안 지겹게 내린 눈 때문에 등반을 못하고 눈이 그친 뒤에는 캠프와 루트를 복구하느라 귀중한 시간과 체력을 써야 했다.

구은수 부대장 팀이 캠프2로 하강을 하는 사이 캠프 1에서는 여병은 등반대장, 김옥경, 한동익 대원등이 캠프2로 올라갔다. 5일에는 여병은 등반대장 팀이 구은수 부대장팀과 교대, 탈레이사가르 정상을 향해 등반을 계속할 예정이다.

nanga@osen.co.kr

<사진> 탈레이사가르 북벽 등반 진행상황. P로 표시된 지점이 8월 27일 현재 대원들이 올라가 있는 고도다. 아래쪽의 붉은 원은 확보물 설치 지점. P 포인트 위쪽은 남아 있는 등반 루트를 보여준다./ 4일 8일만에 다시 원정대의 등반고도를 높인 구은수 부대장이 윤여춘 대원이 등반하는 동안 확보를 보고 있다./ABC에서 등반하고 있는 대원들을 지휘하고 있는 서우석 기술위원. 망원경과 무전기가 항상 그의 곁에 있다./원정대 제공.
출처 : 한국산악인, 악마의 성벽에 오르다(16)
글쓴이 : 황금거북(경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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