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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연재]한국산악인, 악마의 성벽에 오르다(6)

cj8848 2009. 1. 26. 00:24

 




[OSEN=박승현 기자]12일 조긴 캠프 1 설치가 완료됐다. 가파른 설사면을 올라 5,800m 능선지대에 텐트가 들어섰다.

이틀이 걸린 캠프1 설치는 여병은 등반 대장이 이끌었다. 서울산악조난구조대의 교육훈련 팀장을 맡고 있는 여병은 등반대장은 2003년 에베레스트에 원정한 경험이 있다. 당시 고산경험이 이번 원정에서도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됐고 박희영 원정대장을 보좌하며 등반을 이끌 수 있도록 등반대장의 중책이 맡겨졌다.

여병은 등반대장은 김형수, 염동우 대원과 팀을 이뤄 설사면 구간을 올랐고 무사히 캠프1 설치를 마쳤다. 설사면 구간에는 뒤에 올라올 대원들을 위해 고정로프를 깔아뒀다.

13일에는 구은수 원정부대장, 유상범, 윤여춘 대원이 조긴 캠프1에 올랐다. 이들의 목표는 능선 구간을 올라 조긴 정상에 오르는 것이다. 당초 예상과 달리 정상부 300여m는 암벽지대인 것으로 관찰됐다. 난이도가 높아진 셈이지만 그렇다고 등정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다.

조긴에 여섯명의 대원이 매달려 있는 동안 나머지 대원들은 탈레이사가르 캠프1(5500m)까지 짐수송을 계속하고 있다. 탈레이사가르 북벽 등반에 필요한 등반로프, 고정로프, 볼트, 하켄, 아이스스크루, 스노우바, 침낭, 포타렛지 등 등반 장비에 대원들이 먹을 식량 등이 옮겨 놓아야 할 물품들이다.

사실 해외 고산등반에 나서는 원정대에게 짐수송 만큼 어려우면서도 빛나지 않는 일은 없다. 아직 소수의 인원이 함께 베이스를 출발, 정상에 다녀오는 알파인 스타일 등반이 아닌 이상 정상에 오르는 중간에 캠프 설치는 필연이다. 또 그 캠프마다 필요한 장비나 식량을 옮겨 놓아야 한다. 이를 위한 짐수송이야 말로 등반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열쇠가 되기도 하고 귀중한 목숨을 살릴 수 있게도 된다.

기진맥진해 정상에서 돌아오거나 아니면 중간에서 악천후로 고립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전에 수송해 놓은 짐들이 얼마나 충실한가에 따라 그야말로 천국과 지옥을 오갈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짐수송이 만만한 작업은 아니다. 빈몸이라도 움직이기 힘든 것이 고소다. 이런 판국에 20kg씩 되는 배낭을 메고 산에 오르려면 그야말로 죽을 맛이 따로 없다. 그렇다고 빛이 나는 것도 아니다. 물론 대원들 사이에서야 누가 고생했고 누가 힘들었는지 모두 기억하지만 외부의 시각은 그렇지 않다.

허영호, 엄홍길은 알더라도 그들이 정상에 오르기까지 함께 짐을 나르며 고생한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런 일이 바로 짐수송이다.

여기에 이번 원정대원들의 짐수송은 더 힘든 부분이 있다. 대부분의 짐을 대원들 손으로 옮겨야 한다는 점이다. 많은 히말라야 등반에서 중간 캠프까지 짐수송은 셀파나 고소포터들을 고용한다. 물론 대원들이 짐수송을 함께 하지만 모든 짐을 다 수송하는데는 시간과 체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원정대는 이런 예를 따르지 않았다.

우선 대상지가 인도인 관계로 능숙한 고소포터를 고용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벽등반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탈레이사가르 북벽 등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탈레이사가르 캠프1 이후에는 사실 캠프를 설치할 장소가 없다. 포타렛지라고 불리는 암벽용 비박장비가 캠프를 대신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탈레이사가르는 캠프1 이후 등반에 필요한 모든 장비와 먹을 것, 입을 것은 대원들이 직접 등반을 하면서 수송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힘들고 빛나지 않는 짐수송이지만 원정대는 출발 전부터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팀워크를 믿었기 때문이다. 사실 많은 원정대에서 히말라야 등반 중 잡음이 난다면 십중팔구 정상공격조를 정하거나 짐수송 과정에서 일어나기 마련이다. 본능적으로 짐수송을 꺼려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탈레이사가르 같이 고난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벽등반을 앞에 두고 있다면 누구나 ‘무리 하지 말고 컨디션 조절에 열중하자’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등반능력이 좋은 사람들끼리 만나 이른바 드림팀을 구성한다고 해도 막상 등반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려운 것도 바로 이런 생각 때문이다. 누군가 짐은 옮겨 놔야 하는데 서로 꺼린다면 등반은 시작부터 삐걱거릴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왜 이번 원정대는 대원들이 직접 짐수송 하는 것을 별 걱정 없이 받아들였을까. 바로 전원이 서울산악조난구조대원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이 속한 산악회들이 따로 있기도 하지만 거기에서 ‘뽑혀서’ 구조대원들이 됐다. 이후에는 구조대원으로 필요한 자질을 갖추기 위해 혹독한 훈련기간을 거친다. 구조대원으로 활동하는 것도 그렇다. 때로는 내 생명까지 위태로운 상황에서 남을 돋기 위해 나선다는 것이 어디 보통 마음가짐으로 되는 일인가. 이런 산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에 원정대는 별 고민 없이 대원들이 직접 짐수송을 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nanga@osen.co.kr

해발 5100m에 설치한 ABC에서 바라본 탈레이사가르. 이날 밤은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다.(사진 위) 대원들이 짐수송을 하고 있는 탈레이사가르 캠프1. 좌측 설사면을 지나면 탈레이사가르 북벽이 시작된다.(가운데)조긴 설사면을 지나 5800m 지점에 설치한 조긴 캠프1의 야경. 눈이 날리고 있다. /사진=원정대 제공
출처 : [연재]한국산악인, 악마의 성벽에 오르다(6)
글쓴이 : 황금거북(경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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