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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탈레샤갸르 원정 이야기 2

cj8848 2007. 11. 15. 02:52
“구조대만의 시스템 아니었다면 등정 어려웠을 것”

▲ 대산련 이인정 회장으로부터 제8회 한국산악대상을 받고 있는 서울산악구조대의 2006 네파 탈레이사가르 원정대 김형섭 단장과 대원들.<사진=김승완 기자>

등산의류 브랜드 네파(대표 김형섭)가 등반비 대부분을 부담했기에 네파 탈레이사가르 원정대라 이름한 구조대팀의 구은수(38), 유상범(31) 두 대원은 ‘암벽에 살짝 버섯고드름이 덮인 까다로운 벽’에서 추락과 혹독한 비박을 반복한 끝에 등정에 성공했다. 구은수, 유상범 두 대원은 9월6일 저녁 악명 높은 블랙타워 밑(6,400m)에 도달, 3시간에 걸쳐 겨우 깎아낸 얼음턱에 앉아 비박한 이후 7일은 블랙타워 3분의 1 지점까지 올랐다가 중간으로 되내려와 또다시 비박, 8일은 블랙타워 2분 1 지점까지 돌파한 후 세번째 비박을 했다. 그 다음날 새벽 4시 두 대원은 등반을 재개, 8시간만에 400m 수직벽 블랙타워를 돌파한 뒤 설사면을 거쳐 등정에 성공했다.


등정 이후 하산 또한 살 떨리는 긴장 속에 이루어졌다. 설면이 무른 탓에 아무 고정확보물을 설치할 수 없어, 선배인 구은수 대원은 우선 유상범 대원을 자일로 확보를 봐주며 내려보내고 자신은 클라이밍 다운을 반복한 끝에야 블랙타워 정수리의 고정자일이 설치된 지점으로 내려설 수 있었다.


탈레이사가르 등반 직전 구조대팀은 바로 옆의 조긴(6,456m) 등정부터 이루어냈다. 조긴 등반은 탈레이사가르 북벽의 루트를 찾아내기 위한 목적도 있었던 것으로, 이 조긴 정상 근처에서 과거 다른 등반대들이 몰랐던, 밑에서 바라만 봐서는 결코 찾아낼 수 없는 블랙타워 가운데의 쿨와르를 발견했다. 그러므로 “조긴을 오르지 않았다면 탈레이사가르 북벽 등반도 실패했을 확률이 높다”고 박희영 원정대장은 말한다.


조긴의 한국 초등 또한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조긴 등반에 이어 탈레이사가르 북벽 등반을 마치기까지 구조대는 여러 개의 등반조를 교대로 투입했다. 12명 대원 대부분이 뛰어난 등반 기량을 갖춘 한편 팀웍도 탄탄하지 않고서는 선택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구조에는 일반 등반보다 훨씬 복잡한 등반장비 조작능력과 일사분란한 시스템이 필수인데, 평소 늘 함께 등반하며 구조훈련을 해온 구조대원으로만 원정대가 구성되었기에 이러한 방식의 공략이 가능했다”고 박희영 원정대장은 밝힌다. 달리 말하면, 서울산악구조대만의 독특하고도 능률적인 시스템이 상존하지 않았다면 무난한 등정이 어려웠을 것이란 얘기다.


구조대는 98년 탈레이사가르 정상에서 스러진 세 악우에 대한 예우를 갖추는 데도 나름대로 신경을 기울였다. 김남일 구조대장(43)은 이렇게 밝힌다.


“저희가 2002년 탈레이사가르 옆 브리구판스를 등정했는데, 그 등반이 너무 힘들어서 정부연락관한테 차라리 탈레이사가르로 대상지를 바꿔 달라고 하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하지만 탈레이사가르는 의정부 친구들 것이므로 그 친구들이 마무리 지을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며 그냥 브리구판스 등반을 밀어부쳤죠.”

조난사한 악우들 기려 ‘친구들을 위한 마침표’라 명명

▲ 1)7년째 대장으로서 구조대를 이끌어오며 한국 최고의 등반팀으로도 성장시킨 주역인 김남일 대장. 2)탈레이사가르 북벽 등정을 성공적으로 이끈 박희영 원정대장. 구조대 부대장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3)구조대의 행정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정상택 총무. 4)서울산악조난구조대 김동숙 자문위원장.

‘의정부 친구들’이란 98년 의정부팀 대원인 고 김형진 대원의 형 김형일씨, 고 최승철대원의 미망인 김점숙씨와 그 주변 산악인들을 말한다. 이들이 2003년과 2004년 두 차례에 걸쳐 탈레이사가르 북벽 재등정을 시도, 연이어 실패하고 난 다음 구조대는 “우리가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중 한 사람이 동참을 원했으나 내부 토론 끝에 팀웍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다고 결론이 나 결국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일이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며 김남일 대장은 이렇게 덧붙인다.


“비록 살아오지는 못했지만, 그 친구들이 북벽은 다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들 얘기하잖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루트도 새로 뚫었고, 루트 이름도 ‘친구들을 위한 마침표(Period for Friends)’라고 지었지요.”


그간 서울산악조난구조대는 구조능력의 확장이란 의미선상에서 난벽 등반을 시도해왔다. 그러나 탈레이사가르 북벽이란 난제를 해결해내며 제8회 한국산악대상을 받은 구조대는 이제 한국 산악계의 미래를 헤쳐나아갈 첨병으로서 그 존재 의미를 새롭게 부여받은 것이라 해석한다. 그 자리에서 구조대가 바라보고 있는 대상은 로체 남벽이다.


로체(8,511m) 남벽은 지난 34년간 세계 각국의 산악인들이 19차례 등반을 시도했으나 한 팀도 명확한 성공 기록을 남기지 못한 난벽이다. 89년에는 히말라야 8,000m급 14개봉 완등자인 폴란드의 쿠쿠츠카가 등반 도중 숨지고, 라인홀트 메스너도 도중에 포기했다. 90년 봄 시즌 토모 체센이 64시간만에 단독 등정하고 가을엔 러시아 2인조가 올랐으나 둘 모두 명확한 자료가 없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도 그간 세 팀이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구조대는 이 로체 남벽의 등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내년에 우선 정찰부터 나서기로 했다. 그간 단 한 번의 사고도 없이 여러 난봉 등정을 이루어낸 구조대팀인 만큼 이 난제를 풀어낼 가능성은 과거 어느 팀보다 높다고 할 것이다.


서울산악조난구조대는 태생부터가 독특한 조직이다. 71년 인수봉 남측 오버행 하강루트에서 하강로프가 엉키며 7명이 동사하는 참사가 발생한 이듬해 탄생했다. 산악조난시 소방방재청이나 경찰의 구조를 기대할 수 없었던 당시 서울시산악연맹은 산악인 자체 구조대가 절실함을 느끼고 구조대를 조직하기에 이른 것이다.



예방적 차원의 드러나지 않는 구조활동 펼쳐와


구조대는 서울시산악연맹 산하 각 단위산악회에서 등반기량이 뛰어나 유사시 타인을 구조할 수 있는 사람을 1명씩 선정해 추천하는 형식으로 조직했다. 일단 구조대원이 되면 구조대 계획에 따라 활동하되 한 달에 1번은 반드시 소속 산악회와 더불어 등반하는 것으로 했고, 이 전통은 지금까지 지속돼 오고 있다.
 
등반도 마찬가지지만 산악구조에는 전문적 노하우가 특히 더 강조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구조대는 비록 서울시연맹 산하 조직이면서도 창설 이후 별동대와 같은 방식으로 운영돼 왔다. 한 예로, 차기 구조대장의 선임도 자체적으로 결정한다. 구조대 대장은 4대 김명수씨가 8년, 5대 장봉완씨(현 구조대 고문)가 10년을 맡았고, 현 김남일 대장은 7년째인 등 다소 장기간 대장직을 맡는 것이 전통으로 굳어졌다.


▲ 탈레이사가르 북벽 최난구간인 블랙타워에서의 구은수 대원.

“구조대가 그 이름에 걸맞는 활동을 하기엔 이런 시스템이 적절함을 바로 서울산악조난구조대가 증명하고 있지 않으냐”면서 대원들은 이렇게 말한다. “현재 대산련 산하 전국 각 시도연맹에도 구조대가 조직돼 있지만 태반이 구조대다운 노하우를 갖추지 못하고 있어요. 누군가 연맹의 새 회장이 되면 대개 구조대 대장도 바꿔버립니다. 기존 대원들이 낙하산식으로 임명된 새 대장의 명령을 잘 따르겠습니까. 그러면 그 대장은 구조대 조직 장악을 위해 몇몇 간부들을 바꾸거나 합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허약한 구조대가 될 수밖에 없죠.”


82년 인수봉에서 또다시 7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가 발생한 이후 경찰산악구조대가 창설되어 인수봉과 선인봉 아래에 상주하며 서울산악구조대가 조난사고 수습에 직접 나서야 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 그 후부터 구조대는 예방적 차원의 구조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매주 조별로 인수봉과 선인봉을 등반하며 암벽꾼들의 동향을 살피는 한편 기존확보물 상태를 점검, 보수한다. 경찰구조대는 유사시 출동을 위해 항상 대기상태다. 서울산악조난구조대와 경찰구조대는 이를테면 업무 분담이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인수봉, 선인봉 등 근교 암벽루트의 기존확보물 중에는 위태스런 것들이 매우 많았다. 구조대는 그간 이 노후 확보물 교체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또한 대형 낙반사고의 위험이 있는 암반 제거작업도 도맡았다. 구조대가 이 일련의 작업을 해오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간 암벽꾼의 증가 추세와 기존확보물 상태를 감안하면 한꺼번에 여러 산꾼이 목숨을 잃는 대형사고가 또다시 발생했을지도 모른다.


서울시연맹에 없어서는 안 될 요긴한 조직

▲ 한국 네파원정대가 신 루트를 개척한 탈레이사가르 북벽.

산악행사란 늘 사고의 위험이 내포돼 있기 마련이다. 서울시연맹이 연간 치르고 있는 행사는 30여 건이나 된다. 이중 산악 행사 때마다 응급조치 능력을 갖춘 구조대원이 구조대 복장을 하고 몇 명씩 출동하는 일은 만약의 대비일 뿐 아니라 일종의 의전(儀典)과 같은 의미도 띠게 되었다.


때문에 구조대원 40명은 집안 경조사를 제대로 챙기기가 어려울 정도로 바쁘다. 산악마라톤, 익스트림대회 등과 같은 위험성이 높은 서울시연맹 행사는 물론 서울시연맹 전체의 시산제인 설제 때는 비록 단순 도보산행으로 끝날 망정 구조대원들의 출동은 필수가 되었다.


그렇다고 대원들에게 주어지는 보수는 없다. “나는 여러 산악회 가운데에서 선발된 정예라는 자부심 하나로 힘든 일들을 대원들이 감수하고 있다”고 김남일 대장은 밝힌다.


그간 구조대 운영을 가장 무겁게 압박해온 것은 비용 문제다. 서울시연맹에서 나오는 보조금이 고작 한 달에 10만 원, 적십자사에서 나오는 운영비 20만 원이 공적으로 주어지는 비용의 모두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와 소방방재청에 비영리민간단체로 최근 등록을 마쳤다.


구조대 자문위원회는 구조대의 비용 문제를 일부 해결하고 분위기도 띄우기 위해 2001년 조직한 모임이다. 김동숙 위원장(코베아 대표)을 비롯해 김성찬(우리패션 대표), 장재순(써미트 대표), 최영규(오디캠프 대표), 허철(태영화섬 대표), 김형섭(평안섬유공업 대표) 등 장비업체 사장들과 조대행(빈센트병원 비뇨기과장), 복인규(산울림산악회 부회장), 안재용(삼성제일병원 정형외과 과장), 변기태(하켄클럽 회원), 이철주(티롤알파인클럽) 등 산악 선배들로 구성된 자문위원회는 금전적, 심리적으로 구조대원들에게 적잖은 힘이 되고 있다. 이 자문위 구성 이후 구조대는 한결 활성화되어 탈레이사가르 북벽 등반까지 마칠 수 있었다.


선배의 말에 곧바로 “예!” 하는 대답과 함께 빠르게 움직이는 구조대원들의 모습은 수십 년 전의 정통파 산악모임에서나 볼 수 있던 것이라서 볼 때마다 신선하다. 늘 ‘예(禮)의 산’을 강조해온 구조대 선배들은 후배라 해도 공적인 자리에서만큼은 ***대장이라거나 ***대원이라 부르는 예의를 갖춘다. 구조대의 남다른 능력은 혹 남들은 케케묵었다고 버린 지 오래인 전통의 틀을 고집스레 유지하고 있는 데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 글 안중국 차장
/ 사진 서울산악조난구조대 제공

출처 : 하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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