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주의 가즈 가스버너/영원한 막내편 둘째형의 선물
글 정수정 기자·사진 김도훈 기자
수유초등학교·도봉중학교를 나온 이철주(49세·티롤산악회·서울산악조난구조대 자문위원)씨에게 북한산과 도봉산은 그야말로 동네 뒷산이자 놀이터였다.
“1970년대 초, 집집마다 수도가 없던 우리 동네에 돈을 내고 물을 사다먹는 공동 수도가 있었습니다.
스넥산악회 회원이던 수도 가겟집 형을 따라 어린 나이에 등반을 시작했지요.”
1967년 티롤산악회에서 나온 53년 뱀띠들이 만든 스넥(Snake)산악회는 1995년 다시 티롤산악회와 통합돼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이철주씨가 스넥산악회에 정식 입회한 것은 1972년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그는 거기서 18년이나 막내노릇을 했다.
오죽하면 산악회 형들이 부르는 이름이 아직도 ‘막내’일까. 이철주씨는 집에서도 4형제 중 막내다.
부모님이나 형제들을 통틀어 아무도 등반을 하는 사람은 없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에게 일요일마다 교회 대신 산으로 내빼는 이씨는 언제나 걱정거리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도봉산 주봉 K크랙에서 추락해 6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진 이후에는 한동안 산에 가지 못하도록 방문 앞을 지켰지만 소용없는 일.“마당에 있던 뚜껑 달린 큰 쓰레기통에 배낭이며 장비를 미리 챙겨뒀어요. 그리고 아침에 살금살금 몸만 빠져나가는 겁니다."
산에 푹 빠진 막내를 걱정하는 가족들의 마음이야 한결같겠지만 걱정하고 말리던 어머니나 큰형과 달리 언제나 그의 편이 돼준 사람은 둘째형이었다.
건설회사에 다니던 둘째형은 1977년 외국에 나갔다 돌아오며 마무트 40m 자일 한 동과 가즈 가스버너를 사왔다.
당시 ‘맘모스 통짜’라 부르던 스위스제 자일을 손에 넣은 이철주씨는 얼마나 기쁜지 한달음에 인수봉으로 달려갔다.
“지금은 좋은 제품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지만 그때만 해도 이 프랑스제 가즈 원터치 가스버너는 획기적이었어요. 버너를 당장 켜보고 싶어 냉큼 방에서 라면을 끓여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마무트 자일은 얼마 못가 인수봉 취나드B 상단을 등반하던 중에 크랙에 끼어 눈물을 머금고 잘라버렸지요.” 지금도 둘째형과 “죽이 제일 잘 맞다”는 이철주씨. 이제 가스를 구하지 못해 더 이상 사용할 수도 없는 구닥다리 버너를 버리지 못하는 그의 고마운 마음을 둘째형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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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초등학교·도봉중학교를 나온 이철주(49세·티롤산악회·서울산악조난구조대 자문위원)씨에게 북한산과 도봉산은 그야말로 동네 뒷산이자 놀이터였다.
“1970년대 초, 집집마다 수도가 없던 우리 동네에 돈을 내고 물을 사다먹는 공동 수도가 있었습니다.
스넥산악회 회원이던 수도 가겟집 형을 따라 어린 나이에 등반을 시작했지요.”
1967년 티롤산악회에서 나온 53년 뱀띠들이 만든 스넥(Snake)산악회는 1995년 다시 티롤산악회와 통합돼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이철주씨가 스넥산악회에 정식 입회한 것은 1972년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그는 거기서 18년이나 막내노릇을 했다.
오죽하면 산악회 형들이 부르는 이름이 아직도 ‘막내’일까. 이철주씨는 집에서도 4형제 중 막내다.
부모님이나 형제들을 통틀어 아무도 등반을 하는 사람은 없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에게 일요일마다 교회 대신 산으로 내빼는 이씨는 언제나 걱정거리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도봉산 주봉 K크랙에서 추락해 6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진 이후에는 한동안 산에 가지 못하도록 방문 앞을 지켰지만 소용없는 일.“마당에 있던 뚜껑 달린 큰 쓰레기통에 배낭이며 장비를 미리 챙겨뒀어요. 그리고 아침에 살금살금 몸만 빠져나가는 겁니다."
산에 푹 빠진 막내를 걱정하는 가족들의 마음이야 한결같겠지만 걱정하고 말리던 어머니나 큰형과 달리 언제나 그의 편이 돼준 사람은 둘째형이었다.
건설회사에 다니던 둘째형은 1977년 외국에 나갔다 돌아오며 마무트 40m 자일 한 동과 가즈 가스버너를 사왔다.
당시 ‘맘모스 통짜’라 부르던 스위스제 자일을 손에 넣은 이철주씨는 얼마나 기쁜지 한달음에 인수봉으로 달려갔다.
“지금은 좋은 제품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지만 그때만 해도 이 프랑스제 가즈 원터치 가스버너는 획기적이었어요. 버너를 당장 켜보고 싶어 냉큼 방에서 라면을 끓여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마무트 자일은 얼마 못가 인수봉 취나드B 상단을 등반하던 중에 크랙에 끼어 눈물을 머금고 잘라버렸지요.” 지금도 둘째형과 “죽이 제일 잘 맞다”는 이철주씨. 이제 가스를 구하지 못해 더 이상 사용할 수도 없는 구닥다리 버너를 버리지 못하는 그의 고마운 마음을 둘째형도 알고 있을까.
출처 : 철주형의 가즈버너 이야기./둘째형의 선물이야기.
글쓴이 : 설성산 원글보기
메모 : 산악인이철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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