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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산악인, 악마의 성벽에 오르다(11)

cj8848 2009. 1. 26. 00:15

 




[OSEN=탈레이사가르(인도), 박승현 기자] 8월 29일은 휴식일이었다. 모처럼 전 대원이 베이스캠프에서 하루를 보냈다. 해발 4600m에서 하루를 쉬라고 하면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TV, 라디오, 영화관, 식당, 편의점 아무 것도 없다. 전날 후발대원들이 합류하지 않았다면 한달 넘게 대한 그 얼굴이 그 얼굴이다.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등반 장비를 챙기지 않아도 되는 것이 휴일이 주는 첫 번째 즐거움이다. 대부분의 대원들이 느지막이 텐트를 빠져났다. 식당텐트 겸 본부텐트로 하나 둘 모여들어 아침인사를 나누고 차를 마시고… 저 아랫동네 세상은 월요일 아침의 분주함이 넘쳐나겠지만 베이스 캠프는 천상 한가로운 일요일 오전 분위기다.

그렇다고 마냥 몸을 놔둘 순 없다. 많은 대원들이 밀렸던 세탁물을 들고 물가로 나간다. 베이스캠프 옆에는 케다르탈이라는 커다란 빙하호수가 있다. 하지만 이 물을 세탁에 사용할 순 없는 일이다. 대원들의 귀중한 식수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탁장’은 반대편에 있다. 한 5분쯤 언덕길을 걸어가면 조그만 물웅덩이가 나온다. 미리 준비해간 그릇으로 물을 퍼서 빨래를 한 후 웅덩이와 좀 떨어진 곳에 버린다. 이 물 역시 다음 대원을 위해 오염시킬 순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등반에 열중하느라 여기저기 조금씩 망가지고 헐거워진 장비를 손보는 것도 휴일에 해야할 중요한 일이다. 두 명의 대원이 한 테트에 나란이 앉아 서로의 장비를 비교해 보기도 하고 망가진 부품을 구하느라 여기저기 다니는 모습도 보인다. 그 동안 찍어 두었던 사진을 정리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대원들은 노트북과 외장 하드디스크 등을 이용해 등반과정별로 사진을 정리해 둔다. 나중에 귀중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행정을 맡아 출국 전부터 서류와 씨름해야 했던 김옥경 대원은 텐트 안에서 독서 삼매경에 빠져있다. 고소에 적응했다고는 하지만 고산지대에서는 사고력이 현저히 둔화된다. 당연히 책을 읽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 더구나 이제는 활자가 지겨워질 만도 하건만 김옥경 대원은 끄덕도 하지 않고 책장을 넘기고 있다.

점심 때는 특식이 준비됐다. 전날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복인규 서울시산악연맹 환경보전이사가 평소 갖고 있던 솜씨를 마음껏 발휘했다. 양고기를 부위별로 나누어 수육과 불고기로 먹도록 했다. 대원들은 양고기 특유의 냄새를 완벽하게 없애고 입맛을 살게 해 준 복인규 이사의 솜씨에 부지런히 젓가락을 놀렸다.

원정대의 식사를 책임지는 쿡과 키친보이가 있는 네팔이나 파키스탄 지역의 원정등반과 달리 인도지역에서는 대원들 스스로 음식을 해결해야 한다. 베이스 캠프에 쿡이 있기는 하지만 주임무는 정부연락관의 식사를 해주는 것이고 물 끓이는 정도가 원정대를 위해 하는 일의 전부다. 이런 상황에서 복인규 이사가 베이스에 합류하면서 부엌의 주인공이 바뀌었다. 전문 요리사 뺨치는 음식솜씨에도 서울에서부터 가져온 갖은 재료들을 사용해 대원들이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저녁 식사 후에는 대원들끼리 장기판이 벌어졌다. 사실 베이스캠프에서는 바둑, 장기 이상 가는 소일거리가 없다. 여기에 최근에 등장한 ‘우드케이크’라는 놀이가 대원들의 무료함을 달래주고 있다.

모든 휴식은 일을 전제로 한다. 밤이 이슥하도록 조긴 등반에 나서야 할 후발대의 이철주 대원이 앞서 조긴 정상에 섰던 김옥경, 김형수 대원에게 부지런히 루트상태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대원들이 등반 도중 찍어 놓은 사진이 노트북에 저장 돼 있어 좀 더 생생한 상황전달이 가능하다.

탈레이사가르 북벽공략을 계속해야 하는 구은수 부대장은 일일이 루트 개념도를 그려가면서 전날까지 사용했던 장비에 대해 기록했다. 확보물의 종류와 위치, 자일 숫자 등을 나타냈다. 이 기록은 원정대의 남아 있는 장비와 앞으로 등반에 필요한 장비 숫자를 비교하는 데 긴요할 뿐 아니라 이미 확보해 놓은 루트의 상태에 대한 정보를 전체 대원들이 공유하는 데 유용하게 쓰이게 된다.

현지시각 밤 10시께 박희영 대장은 서우석 기술위원, 여동은 등반대장 등과 회의를 했다. 이 자리에서 탈레이사가르 북벽 등반과 관련한 중요한 결정이 내려졌다. 내일부터 북벽등반을 2인 1조로 하기로 한 것이다. 종전까지는 3인 1조였으나 한 명을 줄였다. 각 조는 이틀 동안 등반을 한 뒤 나흘을 쉬게 된다. 현재 대원들이 장기간 등반으로 컨디션이 떨어진 점을 고려해 휴식일을 늘리려는 의도다.

이 자리에서는 박희영 원정대장이 북벽 등반에 직접 나서는 방안도 심도 있게 논의됐지만 일단은 보류하기로 했다. 박희영 대장이 탁월한 기량을 가진 등반가임은 분명하지만 아직까지는 전체 원정을 지휘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이 대세였다.

같은 시각 조긴 등반에 나섰던 대원들과 앞으로 조긴 등반을 남겨 놓은 후발대 대원들의 전체 회의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앞으로 등반의 중점은 탈레이사가르에 둔다▲조긴 등반은 서두르지 않되 탈레이사가르 등반에 방해가 돼서는 안 된다▲30일 후발대 대원 전체가 ABC로 진출한 뒤 회의를 통해 등반조를 결정한다는 등의 원칙이 정해졌다.

nanga@osen.co.kr

<사진> 대원들이 식당텐트에 모여서 식사를 하고 있다. 30인용 대형 돔 텐트에서는 식사, 회의가 가능하다. /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는 김옥경 대원. 김 대원은 탈레이사가르 북벽 등반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 / 베이스에서 바라본 탈레이사가르 북벽 하단부의 빙하. 좌측 상단의 바위 위로 캠프1이 설치돼 있지만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대원들은 이 빙하를 가로질러 캠프1으로 향한다. /원정대 제공.
출처 : 한국산악인, 악마의 성벽에 오르다(11)
글쓴이 : 황금거북(경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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